거액 인출 후 실종…이틀만에 변사체로 발견
1992년 3월 26일, 고보임(당시 56세)씨의 행동반경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가디나에서 ‘도넛&델리’와 함께 체크캐싱 비즈니스도 운영하던 고씨는 고객을 위한 현금을 준비하기 위해 매주 목, 금요일 은행을 방문하곤 했다. 한번 인출할 때마다 보통 1만 달러에서 4만 달러 사이었다. 그날도 고씨는 그가 살던 세리토스 지역의 퍼스트 글로벌 은행에서 4만 달러를 인출했다. 하지만 돈을 차량에 싣고 떠난 것을 끝으로 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당시 고씨와 함께 살고 있던 전 남편은 고씨가 돌아오지 않자 실종 신고를 했다. 그리고 불과 이틀 뒤인 3월 28일 오후 4시 20분쯤, 고씨는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에서 120마일이나 떨어진 샌디에이고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됐다. 고씨의 차량(78년형 올스모빌 98)은 샌디에이고의 포인트 로마 플라자 몰 뒤편 주차장에 주차되어있었다. 고씨는 이 차 안에서 머리와 목에 3발의 총격 자국과 함께 신문지에 싸여 조수석 밑에 처참히 놓여있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주차장에 이틀간 계속 주차해 있는 차를 수상히 여긴 쇼핑몰 내 한 세탁소 종업원의 신고로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경찰은 이 차량이 수배된 차량이었으며 숨진 여성이 고씨인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과 언론들은 이 사건을 강도에 의한 납치 사건에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샌디에이고 경찰국에 따르면 사건 8개월전인 1991년 7월 고씨가 운영하던 가게에 히스패닉 강도 3인조가 침입해 종업원 2명과 손님 4명을 인질로 삼았다. 당시 이들은 1시간 30분을 기다려 첵캐싱자금을 인출해오는 고씨를 위협해 10만 달러를 강탈했다. 당시 경찰은 “그때 고씨의 가방 안에 은행 통장도 함께 있어 거래 은행을 알고 있었고 또한 고씨의 차량도 알고 있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본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당시 시신이 샌디에이고에서 발견된 점을 토대로 용의자들이 멕시코로 도주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유족들 역시 이를 강도 사건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유가족들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가게를 턴 그놈들의 범행”이라며 진작 가게를 옮겼어야 했다고 애통해하기도 했다. 유가족들과 지인들은 고씨를 평소 인정이 많고 온화한 성격으로 소개했다. 또한 6년 동안이나 아프리카 케냐에 선교사업후원금으로 매달 100달러씩 보내온 착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전했다. 당시 경찰은 사건 한 달이 넘도록 수사에 진전을 얻지 못했다. 범인들이 다른 주로 도주했을 가능성에 대비해 경찰은 주요 방송사와 함께 비디오 홍보물을 제작하고 방영하기도 했지만, 용의자에 대한 단서 하나를 더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고씨 사건은 시간과 함께 묻히는 듯했다. 이번 샌디에이고 카운티 검찰청(SDCDA)의 새로운 용의자 원동호씨의 지목으로 고씨 사건은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그러나 살해 용의자가 히스패닉 강도 일당이 아닌 한인 남성이라는 점, 그리고 범행 목적이 돈이 아니었다는 점 등 당초 예상했던 사건의 성격과는 극명히 달라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있다.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고보임 용의자 샌디에이고 경찰국 히스패닉 강도 그때 고씨